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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EVIEW

도드람 2017-2018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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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에 만든 반전, 드라마틱했던 첫 우승

전반기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은 평범했다. 1,2,4라운드에서 나란히 3승 3패를 기록했다. 3라운드에서 4승 2패로 선전했을 뿐 선두권으로 가기엔 부족한 성적이 이어졌다. 한계가 명확했다. 외국인 선수 밋차 가스파리니에 의존하는 배구로는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없었다. 공격 패턴이 다양한 현대캐피탈, 삼성화재에 비해 대한항공은 상대적으로 막기 수월한 팀이었다. 경기마다 기복도 커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의 충격적인 패배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우승은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반전은 1월 올스타전 휴식기를 지나면서 시작됐다. 당시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열흘 동안 부족한 점을 채워 후반기 도약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했다. 체력과 조직력을 보완해 전력 상승을 노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았지만 그는 결과로 증명했다. 대한항공은 5라운드 첫 경기 삼성화재전을 시작으로 현대캐피탈, OK저축은행을 연이어 세트스코어 3-0으로 대파하며 흐름을 탔다. 이어 우리카드, 한국전력, KB손해보험까지 잡으며 라운드 전승에 성공했다. 좀처럼 3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대한항공은 5라운드 2위에 도약하며 삼성화재와 함께 현대캐피탈을 위협했다. 3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하긴 했지만 4위 KB손해보험과의 승점 차를 7점으로 벌려 준플레이오프를 치르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지는 시즌 막판 플레이오프에 임하는 대한항공에게는 호재였다. 만약 대한항공이 준플레이오프까지 소화했다면 향후 결과는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후반기 최대 성과는 무엇보다 상위권 팀에 약하던 단점을 극복했다는 점이었다. 향후 포스트시즌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약팀만 잘 잡는 게 아니라 강팀을 만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였다.

대한항공은 포스트시즌 내내 극적인 승부를 연출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패했지만 내리 두 경기를 따내며 역전에 성공했다. V-리그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내준 팀이 챔피언결정전으로 향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한항공은 약 8%의 확률을 뚫고 왕좌로 가는 문을 열었다.

박빙이어야 할 챔피언결정전은 대한항공의 여유로운 승리로 끝났다. 플레이오프와 마찬가지로 1차전서 패했지만 연속으로 3경기를 모두 이겼다. 그것도 전 경기 셧아웃 완승이었다. 3경기서 세트스코어로 따지면 9-0의 압승이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결과였다. 정규리그 우승팀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의 기세에 눌려 챔피언의 면모를 발휘하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에 부상자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한항공의 실력이 한 수 위였다. 결국 대한항공은 지난 시즌 당한 패배를 설욕하는 동시에 첫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선수 개인으로 보면 곽승석, 정지석 등의 활약이 후반기 도약의 원동력이었다. 곽승석은 2015~2017시즌까지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침체에 빠졌지만 도드람 2017~2018 V-리그에서 완벽하게 살아났다. 정규리그에서 281득점을 하면서 맹활약하며 대한항공의 레프트 공격을 이끌었다. 정지석의 도약도 눈에 띄었다. 2015~2016시즌 정규리그에서 387득점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비상했던 정지석은 2016~2017시즌 정규리그에서 200득점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자신의 역대 한 시즌 통산 최다득점인 492득점을 폭발시키며 절대적인 존재감을 보였다. 국내 선수들 중에서는 다섯 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했다. 곽승석과 정지석 모두 리시브하기 어려운 서브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더 활용 가치가 높았다. 두 선수는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큰 힘이 됐다.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던 도중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곽승석과 정지석에 대해 “역대 한국 최고의 리시브 라인”이라며 극찬했다.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막강한 수비 라인을 구축했다는 뜻이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진성태와 진상헌, 두 센터들의 활약도 눈 부셨다. 좌우뿐 아니라 센터라인에서도 다채롭게 들어오는 공격에 현대캐피탈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가스파리니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막강한 공격을 선보였다. 우리나이로 30대 중반이 됐지만 좀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버텼다. 가스파리니는 포스트시즌 내내 “힘들지 않다”라고 기계처럼 말하다 챔피언에 오른 후에야 “사실 정말 힘들다”라고 고백했다.

위 선수들을 활용한 주인공은 챔피언결정전 MVP 한선수였다. 한선수는 챔피언결정전 내내 신들린 듯한 토스로 대한항공 공격을 이끌었다.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패턴의 공격은 한선수의 손 끝에서 시작됐다. 박기원 감독이 “한국 최고의 세터”라고 표현한 건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었다. 한선수는 2007년 데뷔 후 단 한 번도 V-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우승 타이틀이 없기 때문에 연봉킹 수식어도 그를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심리적 압박이 큰 상황에서 한선수는 자신의 손으로 대한항공을 정상에 올려놓은 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름값을 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화룡점정은 박기원 감독의 리더십이었다. 1951년생으로 60대 후반인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은 감각으로 선수들을 다뤘다. 흔히 말하는 ‘꼰대’는 그와 거리가 멀었다. 강압적으로 선수들을 압박하는 대신 따뜻하면서도 책임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선수들을 조련했다. 박기원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서브는 무조건 강하게 넣어라”라고 주문했다. 선수들은 감독의 말을 믿고 마음껏 도전했고, 서브는 대한항공 최고의 무기가 됐다. 대한항공과 함께 첫 우승을 달성한 박기원 감독은 도드람 2017~2018 V-리그가 남긴 최대 히트상품이었다. 박기원 감독 역시 우승 직후 울음을 참지 못했다.

대한항공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도 우승의 숨은 공신이었다. 조원태 대한항공 구단주는 지난 시즌 종료 후 훈련장, 숙소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필요한 의료장비와 의료진을 충원했다. 훈련 및 분석이 도움이 되는 고속 카메라까지 설치했다. 선수들은 더 나아진 환경에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기원 감독은 “원래 팀이 잘되려면 선수, 코칭스태프, 구단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라며 “우리 팀은 그 부분에서 100점이었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챔피언 왕좌에 오른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정다워(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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