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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EVIEW

도드람 2021-2022 V-리그

구분값
원맨쇼를 이긴 원팀...2년 연속 통합우승으로 전성기 연 대한항공
 
2020-2021시즌 우승을 견인한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과 결별하고 핀란드 출신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을 선임한 대한항공의 선택은 당시 도박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았다. 1987년생으로 V-리그 역대 최연소 감독 기록을 새로 쓴 틸리카이넨 감독은 주전 세터인 한선수(1985년생)보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리더십에 문제가 생길 거라는 우려마저 나왔다. 게다가 정규시즌 개막을 한 달 앞두고 정지석의 사적인 문제가 발생되며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면서 전력에 큰 타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틸리카이넨 감독을 영입한 대한항공의 선택은 옳았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코트 밖에서는 냉정하게 팀을 이끌었다. 
선수의 이름값이나 연봉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푸른 눈의 이방인’이다 보니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실로만 선수를 판단했다. 일본 배구팀 울프독스 나고야에서 팀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어서 아시아 배구에 익숙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는 배구가 아니라 6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틸리카이넨식 ‘원팀’ 배구는 그렇게 탄생했다.
 
대한항공의 시즌 초반 비행은 불안정했다. 정지석 공백을 채우기 위해 아포짓 포지션인 링컨과 임동혁을 동시에 기용하는 ‘더블 해머’ 시스템을 들고나왔지만, 리시브에 약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1라운드 대한항공의 성적은 2승 4패로 6위에 머물렀다. 
디펜딩챔피언이자 우승 후보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대한항공은 조직력을 치밀하게 다지는 것에서 해답을 찾았다. 리베로 정성민이 2021년 11월부터 코트에 복귀해 수비를 다졌고, 베테랑 선수들도 제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결국 2라운드 4승 2패로 분위기를 반전한 대한항공은 정지석이 빠진 시기를 6승 6패, 2위로 마치며 성공적으로 버티기에 성공했다.
 
3라운드부터 정지석이 복귀하면서 대한항공의 고공비행이 시작됐다. 정지석은 숱한 논란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줬고, 원래 자리를 찾은 임동혁의 공격력도 살아났다. 항상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곽승석의 보이지 않는 헌신도 팀의 하나로 묶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3라운드 5승 1패로 단독 선두에 나선 대한항공은 5라운드까지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대한항공의 정규시즌 1위를 위협한 대항마는 KB손해보험이었다. ‘괴물 공격수’ 케이타를 앞세운 KB손해보험은 시즌 막판 대한항공과 선두 자리를 번갈아 차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포스트시즌이 축소된 2021-2022시즌 V리그는 그만큼 변수가 많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위해서는 정규시즌 1위가 절실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정규리그 1경기를 남겨두고서야 간신히 2년 연속이자 구단 역대 5번째 정규리그 정상을 차지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상대도 KB손해보험이었다. 1차전은 케이타를 27점으로 묶은 대한항공의 3-1 승리였다. 링컨은 31점으로 양 팀 최다 득점을 기록했고, 정지석과 곽승석도 나란히 15점을 올려 삼각편대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2차전은 케이타가 35점으로 살아나며 KB손해보험이 3-1로 가져갔고, 그렇게 두 팀은 역대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 결정 경기 가운데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히는 최종 3차전에 들어갔다.
 
대한항공과 KB손해보험은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을 모두 합해 가장 긴 2시간 57분의 혈투를 펼쳤다. 최종 결과는 대한항공의 3-2 승리. 정지석은 31점을 폭발한 가운데 후위 공격 7개, 서브 에이스 4개, 블로킹 득점 4개로 토종 선수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트리플크라운에 성공했다. 링컨도 34점으로 날아올랐고, 곽승석은 물샐틈없는 리시브로 코트를 지킨 가운데서도 10점으로 두 자릿수 점수를 올렸다. 주전 선수들의 고른 활약이 57점을 퍼부으며 케이타가 고군분투한 KB손해보험을 넘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남자부 역대 2번째 2년 연속 통합우승으로 전성기를 연 대한항공의 2021-2022시즌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원맨쇼보다 강했던 원팀’이다. 괴물 공격수 케이타를 앞세워 시즌 내내 대한항공의 정상 정복을 가로막고자 했던 KB를 ‘원팀’으로 극복한 것이다. 곽승석과 임동혁, 링컨은 공수에서 짜임새 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뒤늦게 합류한 정지석은 논란 속에서도 기량만큼은 확실하게 보여줬다. 1985년생 동갑내기 세터 한선수와 유광우의 경기 조율도 노련했고,
리베로 정성민과 오은렬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특정 선수의 공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대한항공의 선수들은 원팀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대한항공은 V-리그 시상식에서 한 명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주전 선수들이 고루 활약을 펼친 덕분에 특출하게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상식만큼은 원팀보다는 원맨쇼를 펼친 선수가 유리하다.
특히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케이타(KB손해보험)가 대한항공 선수들의 수상을 가로막았다. MVP 투표에서 31표 가운데 7표를 얻은 곽승석은 케이타의 만장일치 수상을 저지한 것에 만족해야 했고,
베스트7에서도 출전 시간을 나눈 링컨과 임동혁은 케이타를 넘지 못했다. 
대신 틸리카이넨 감독이 남자부 감독상을 받아 아쉬움을 달랬다.
 
대한항공은 시즌이 끝난 뒤에도 기민하게 움직여서 우승 전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먼저 프로배구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인 레프트 공격수 정지석을 역대 FA 최고 몸값인 9억2천만원(연봉 7억원, 옵션 2억2천만원)에 붙잡는 데 성공했다. 
이는 2021-2022시즌을 앞두고 7억5천만원에 사인했던 대한항공 주전 세터 한선수의 종전 최고액을 제친 기록이다. 연봉 5억8천만원을 받았던 정지석은 팀의 통합우승을 이끈 대가로 3억4천만원이 인상된 금액에 사인했다. 
통합 우승의 숨은 주역인 레프트 곽승석도 총액 7억1천만원(연봉 5억원·옵션 2억1천만원)에 사인했고,
센터 김규민(총액 5억500만원)과 센터 진성태(총액 3억1,200만원)도 잔류했다. 
여기에 현대캐피탈에서 뛰었던 세터 김형진을 총액 1억4,200만원에 데려와 대한항공은 이번 FA시장에서 유일하게 타구단 선수를 영입했다.
외국인 선수 링컨 윌리엄스도 20만 달러 인상된 연봉 55만 달러에 계약을 마쳐 다음 시즌 비상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제 대한항공은 2022-2023시즌에서 삼성화재만이 기록했던 3연속 통합우승 대기록에 도전한다.
 
이대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