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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EVIEW

도드람 2017-2018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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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의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 아니라 준비의 계절이다. 한국전력 빅스톰의 가을 준비는 착실하게 이뤄졌다. 수석 코치를 지내다 신임 감독이 된 김철수 감독의 준비도 차근차근 채워졌다. 강서브가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은 한국 프로배구 스타일에 팀의 수비 시스템을 맞췄다.

그 성과가 9월 열린 2017 천안·넵스컵 프로배구대회에서 결실로 나타났다. 한국전력은 9월 23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결승에서 우리카드에 3-1로 이겼다. 앞선 2016년 대회 때 창단 처음으로 컵 대회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2년 연속 우승이었다. 남자부에서 2년 연속 컵 대회를 우승한 것은 한국전력이 처음이었다. 수석 코치를 거쳐 신임 감독이 된 김철수 감독은 데뷔 첫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일종의 모의고사지만 컵 대회 우승은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무엇보다 외국인 공격수 펠리페의 실력을 확인한 부분은 커다란 소득이었다. 펠리페는 강력한 서브를 가졌고, 공격에서의 파워가 뛰어났다. 2단 공격의 정확도는 가다듬어야 하지만 후위 공격의 힘은 좀처럼 밀리지 않았다. 상대의 강서브를 차단하기 위해 준비한 4인 리시브 포메이션에서도 펠리페는 제 몫을 해냈다.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 전광인, 서재덕에 펠리페가 가세한 3각 편대라면 정규시즌에서 기대감을 가져볼 만 했다. 시즌을 앞두고 세터 강민웅이 갑작스런 부상을 당했지만 베테랑 세터 권영민이 합류했다. 정규시즌까지 권영민과 공격수들 사이의 호흡을 가다듬는다면 이전시즌 성적(3위) 이상을 노려볼 만 했다.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시즌은 항상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도드람 2017~2018 V-리그 첫 경기 OK저축은행전을 앞두고 김철수 감독은 “준비는 잘 됐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펠리페-전광인-서재덕으로 이어지는 공격 옵션은 특정 선수에게 공격을 몰리지 않게 할 수 있다. 세터 권영민의 노련함이라면 경기 운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기대감이 높았던 OK저축은행과의 첫 경기를 2-3으로 내주며 삐끗했다.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효과적인 공격 배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비교적 높이가 약한 것으로 평가받던 OK저축은행에게 블로킹에서 밀렸다.

2차전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하면서 첫 경기 패배를 바로잡았다. 패배를 바로잡는 것은 준비된 팀의 특성이다. 리시브에서 안정감을 가져왔고, 세터와 삼각편대의 호흡도 조금씩 위력을 발휘했다. 상대 서브를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공격 옵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확인했다.

하지만 준비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이 시즌 중에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스포츠는 최선의 준비만으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한 시즌을 치르다보면 운과 시련이 봄날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처럼 이리저리 휘몰아친다. 한국전력의 시련은 시즌 3번째 경기에서 찾아왔다. 2차전 KB손해보험과의 경기를 통해 팀 전력을 재정비한 한국전력은 전년도 챔피언 현대캐피탈을 맞아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를 압도하면서 3-0 완승을 거뒀다.

홈 개막전, 팬들의 응원 속에 삼각편대가 힘을 냈다. 전광인이 17점, 펠리페가 16점, 서재덕이 10점을 올렸다. 전광인은 “무엇보다 홈 개막전에서 이기고 싶었다.”고 했다. 시즌에 대한 청신호가 켜지는 듯 했지만, 심각한 적신호가 커진 경기였다. 3세트 도중 서재덕이 왼쪽 무릎을 다쳤다. 예상보다 부상이 심각했다. 다음날 MRI 촬영 결과 수술을 받았던 왼쪽 무릎 연골이 분리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큰 수술을 아니었지만 수술을 받아야 했다.

4차전 삼성화재 전에서 삼각 편대가 해체됐다. 삼성화재를 맞아 0-3으로 완패했다. 대한항공에도 연패를 당했고, 우리카드를 만나 3-1로 이겨 1라운드를 3승3패로 마무리했다.

2라운드 들면서 서재덕의 공백이 더욱 커졌다. 2라운드를 시작하고 4경기 연속 모두 0-3으로 졌다.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면서 승점을 1점도 챙기지 못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가졌던 기대감이 꺾였다. 그래도 패배가 이어지는 동안 소득이 없지 않았다. 부상 선수들의 공백을 새 얼굴로 메웠다. 흔들리는 세터 권영민 대신 신인 이호건이 출전하면서 경기 경험을 쌓았다. 서재덕의 빈자리는 김인혁이 메웠다. 새 얼굴이 스타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은 기술이나 체력보다 경기 경험의 몫이 더 크다. 4연패 동안 쌓인 경험은 한국전력의 연승을 만들었다. 설상가상 윤봉우마저 허벅지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시련은 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전력은 2라운드 막판 2경기를 잡아내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봄 배구에 대한 희망도 다시 살려냈다. 3라운드 막판 KB손해보험과 OK저축은행을 잡으면서 다시 한 번 연승을 거뒀고, 우리카드와 대한항공을 마저 꺾으면서 4연승을 이어갔다. 서재덕 부상 이후 공격부담이 커지면서 전광인의 무릎 상태도 썩 좋지 않았지만 주 공격수 펠리페와 신인 세터 이호건의 호흡이 점점 더 잘 맞아 떨어졌다. 4연승을 거두는 동안 펠리페는 3경기에서 30득점을 터뜨리면서 맹활약했다. 나머지 1경기에서도 29득점을 올렸다. 김인혁 마저 부상을 당했지만 공재학이 빈자리를 채웠다. 이호건은 경기를 치를수록 토스의 안정감이 나아졌다. 4연승을 거뒀을 때 한국전력은 순위를 3위까지 끌어올렸다.

이가 빠지면서 잇몸으로 버텼다. 펠리페의 공격부담이 커졌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벌떼 배구로 힘껏 도왔다. 잇몸 배구에는 한계가 없을 수 없다. 2017년의 마지막을 투혼으로 불태웠지만 새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1월4일 삼성화재 전 3-2 승리 이후 퐁당퐁당 승부가 이어졌다. 5라운드들어 4연패가 쌓였다. 서재덕이 코트에 돌아왔지만 부상전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무릎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 부담이 컸던 전광인은 공격 성공 보다 범실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커졌다. 호쾌한 공격이 나오지 않았다. 승부처마다 세트 막판 고비를 넘을 수 있는 힘이 모자랐다. 필요할 때 제 몫을 해 줘야 할 해결사의 부재는 시즌 막판 중요한 승부에서 결정력을 떨어뜨렸다.

6라운드를 3승3패로 마쳤지만 이미 봄 배구와 멀어진 뒤였다. 시즌 전 준비는 나쁘지 않았지만 연이은 부상이 봄 배구를 향한 꿈을 좌절시켰다. 비극을 만드는 것은 시련이지만 그 어떤 비극도 절망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극 속 시련은 주인공을 강하게 만든다.

한국전력은 줄부상이라는 시련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강민웅, 서재덕, 윤봉우 등 주축 전력들이 줄줄이 다친 가운데 백업 요원들과 새얼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재목과 공재학이 각각 센터와 레프트에서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세터 이호건의 성장이었다. 이호건은 시즌 뒤 열린 시상식에서 29표 중 17표를 얻어 신인상을 받았다. 시즌 내내 안정적인 토스를 선보이면서 부쩍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레프트 김인혁도 서재덕이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주전급으로 성장했다. 풀타임에 가까운 시즌을 치른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안우재와 강승윤이 백업에서 많은 출전기회와 함께 성장한 것도 한국전력으로는 지난 시즌을 통해 얻은 소득이다.

김철수 감독은 “다들 기대 이상으로 해 줬다. 백업 선수들이 한 단계 올라섰고, 신인들도 잘 해 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이번 시즌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력이 뜨거운 여름을 보낸다면, 새로 맞은 겨울 더 단단한 팀이 될 수 있다는 걸,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 시즌 보여줬다.

이용균(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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