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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EVIEW

도드람 2019-2020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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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간 한국도로공사의 봄은 따뜻했다. 2017~2018시즌에는 창단 첫 통합우승의 기쁨을 누렸고, 준우승으로 끝났지만 2018~2019시즌에는 흥국생명과 챔피언결정전에서 명승부를 연출했다.

어엿한 강호로 자리 잡는 듯 했던 한국도로공사는 올해 쓰라린 실패를 맛봤다. 최종 성적은 7승19패(승점 22). 6개팀 중 6위였다. 2016~2017시즌 이후 3년 만에 다시 최하위로 떨어진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초유의 조기 종료라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이들이 봄 배구에 초청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실패로 돌아간 테일러 카드
 
한국도로공사는 온전한 상태로 시즌을 시작하지 못했다. 센터 배유나가 2018~2019시즌이 끝난 뒤 어깨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배유나의 긴 공백은 어느 정도 계산된 부분이다. 김종민 감독은 KGC인삼공사에서 유희옥을 데려오는 것으로 전력 누수를 최소화했다.

진짜 문제는 외국인 선수에서 발생했다.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프로 종목에 비해 훨씬 크다. 외국인 선수가 효율적으로 운용되지 않으면 성적을 내기 어려운 무대가 바로 V-리그다. 한국도로공사는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미국 출신의 셰리단 앳킨슨을 택했다. 앳킨슨은 사전평가에서 2위에 올랐을 정도로 많은 팀들이 탐냈던 선수. 하지만 동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앳킨슨은 개막을 앞두고 오른 무릎 내측 측부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도로공사는 급하게 대체 선수 수급에 나섰고 V-리그 유경험자인 테일러 쿡에게 운명을 맡겼다. 문제는 테일러가 V-리그에서 뛰던 당시 좋은 기억만 남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15~2016시즌과 2017~2018시즌 흥국생명에서 뛴 테일러는 두 번 모두 부상과 한반도의 불안한 정세를 핑계로 중도에 팀을 떠났다.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김종민 감독은 기량만큼은 검증된 테일러에게 교체 카드를 할애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결정은 한국도로공사의 시즌을 완전히 망쳤다. 1라운드 초반부터 불성실한 태도로 불안감을 자아냈던 테일러는 2라운드를 아예 건너뛰었다. 테일러의 고질병은 허리가 아닌 툭하면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안일한 정신력이었다. 한국도로공사의 인내심은 금방 한계에 도달했다.

한국도로공사는 태업에 가까운 행동으로 일관하던 테일러에게 결국 퇴출을 명령했다. 묘수가 되길 원했던 한국도로공사의 선택이 최악의 한 수로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두 차례 외국인 교체를 겪으면서 선수들은 빠르게 지쳤다. 설상가상으로 세 번째 외국인 선수인 쿠바 출신 디야미 산체스는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탓인지 기량이 현저히 떨어졌다.

국내 선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격력으로 간간히 명맥을 유지하던 산체스는 지난 2월 흥국생명전에서 손목 부상까지 당했다. 어렵게 모셔온 세 번째 외국인 선수의 이탈은 한국도로공사에겐 봄 배구 실패 선고나 진배없었다.
 
-더딘 세대교체
 
한국도로공사의 1년이 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이유는 장기적인 운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세대교체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적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체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는데 이마저도 되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는 만 40세가 된 베테랑 세터 이효희에게 여전히 크게 의지했다. 이효희는 팀이 치른 26경기 중 1경기를 제외하고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93세트를 뛴 이효희의 세트당 평균 세트수는 8.624개로 GS칼텍스의 이고은(7.767개), 안혜진(5.109개)보다 많았다. 이효희보다 한 살이 적은 센터 정대영은 블로킹 7위(세트당 0.554개), 이동공격 8위(서공률 36.07%), 속공 9위(성공률 34.56%)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발휘했다. 두 선수가 아직 팀의 중심에 서있는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뭐래도 철저한 자기관리가 동반된 덕분이다. 지독할 정도의 절제가 없다면 살벌한 스케줄로 채워진 V-리그에서 40대 선수들이 살아남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들을 실력으로 밀어낼 후배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도로공사 입장에서 한번쯤 곱씹어봐야할 문제다. 입단 초부터 이효희의 후계자로 각광을 받던 이원정은 코트의 사령관을 맡기엔 아직 부족했다. 2016~2017시즌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한국도로공사에 입단한 센터 정선아의 성장 속도가 더딘 것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어느덧 4번째 시즌을 맞이한 정선아는 올 시즌 52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자존심 세워준 박정아, 첫 베스트 7에 뽑힌 임명옥
 
우울함으로 가득했던 한국도로공사의 자존심을 세워준 이는 토종 공격수 박정아다.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의 성공 사례로 분류되는 박정아는 잦은 외국인 선수 교체와 국가대표팀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서도 여전히 빛났다. 박정아는 올 시즌 25경기(98세트)에서 470점을 올려 국내선수 득점 1위(전체 4위)라는 혁혁한 성과를 냈다.

외국인 선수의 부재로 블로킹을 달고 다니다시피 하면서도 파괴력을 잃지 않았다. 2019년 12월 7일 IBK기업은행전에서는 데뷔 후 가장 많은 40점을 몰아쳤다. 박정아가 공격을 주도했다면, 후방은 리베로 임명옥이 지켰다. 임명옥은 올 시즌 한국도로공사에서 가장 바빴던 선수 중 하나다. 블로킹을 피해 쏟아지는 상대의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세트 평균 6.359개의 디그를 올리면서 반격의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덕분에 임명옥은 30대 중반 나이에 입단 후 처음 리그 베스트7에 뽑히는 경사를 누렸다.

한국도로공사에서 올 시즌 베스트7에 이름을 올린 이는 임명옥 뿐이다. 문정원의 서브도 한국도로공사 팬들에게는 몇 안 되는 볼거리 중 하나였다. 코트 끝에서부터 달려오다가 힘차게 날아올라 때리는 서브가 어느덧 트레이드마크가 된 문정원은 25경기에서 37개(세트 평균 0.38개)의 서브 에이스를 꽂아 넣으며 GS칼텍스 강소휘(25경기 36개 세트 평균 0.37개)를 1개 차이로 제치고 서브 1위의 감격을 누렸다.

임명옥과 호흡을 맞춘 리시브 라인 역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전새얀과 유서연의 성장도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들이다. 전새얀은 외국인 선수들이 연거푸 말썽을 부릴 때마다 투입돼 제 몫을 해냈다. 135점(25경기)은 입단 후 개인 최고 기록이다. 입단 1년 만에 팀을 두 번이나 옮겨야 했던 유서연 또한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2016~2017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유서연은 시즌 후 김해란의 보상선수로 KGC인삼공사로 향했다가 한 달도 못 채우고 한국도로공사로 트레이드 됐다. 이제는 신인의 티를 완전히 벗고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됐다.

권혁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