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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EVIEW

도드람 2021-2022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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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은 2010년대 중반 이후 V-리그 여자부에서 늘 왕좌 가까이에 위치했던 팀이다. 
2020~2021시즌에는 ‘월드스타’ 김연경까지 합류하며 화려한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비록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리그를 지배하는 팀 중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2021~2022시즌의 흥국생명은 출발부터 하위권으로 꼽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 발생했던 리그의 격랑 속에 선발 레프트와 세터가 팀을 나갔고, 시즌 종료 뒤 김연경까지 중국무대로 재이적한 탓이다. 중앙에서 든든한 블로킹 벽을 세워주던 베테랑 센터 김세영도 은퇴했다. 
여기에 든든한 백업 레프트 이한비는 신생팀 창단 드래프트로 페퍼저축은행으로 떠났다. 순식간에 핵심 멤버 5명이 이탈한 것. 
팀 전력의 절대치를 차지하던 선수들이 떠나고 이들을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던 선수들만 남았다. 
2020년 은퇴했던 리베로 김해란이 돌아왔지만 떠난 선수들의 공백이 워낙 컸기에 시즌 전 평가가 좋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예상은 적중했다. 코로나19 영향 속 6라운드 중반 아쉽게 조기 종료된 2021~2022시즌 정규리그에서 33경기를 치러 10승23패로 6위에 그쳤다.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을 제외한 기존 6개팀 중 최하위다.
 
다만, 내용을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충분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큰 격랑을 겪은 뒤 시즌에 나섰음에도 팀이 무너지지 않았다. 
특히, 끈질긴 수비를 기반으로 해 랠리로 경기를 이끈 뒤 점수를 따내는 팀 컬러를 지켜내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돌아온 김해란과 김미연, 이주아, 김다솔 등 기존 선수들의 분전이 빛나는 부분이다. 결국, 코로나19 영향 속 홈구장 삼산체육관을 사용하지 못해 전 경기를 원정으로 치른 1라운드와 조기 종료로 3경기만 치른 6라운드를 포함해 모든 라운드에서 승리를 챙기는 데에 성공했다. 
리그 중반인 3라운드 때는 3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비록 전력은 약했지만, 팀 분위기가 무너져 연패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전형적인 약팀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던 것. 불과 한 시즌 전까지 챔피언을 다투던 팀에 걸맞은 관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무너지지 않았을 뿐 더 이상 치고 나가지는 못했다. ‘한방’의 부족이 문제였다. 팀 공격을 이끌던 공격수들의 대거 이탈 속에 공격 결정력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노출했다. 이번 시즌 흥국생명은 페퍼저축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6개 팀에게 30%대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다. 외국인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뽑은 캣 벨이 주포로 활약하며 리그 득점 3위에 해당하는 773득점을 올리며 분전했지만 그의 공격성공률도 36.52%에 그쳤다. 
큰 공격을 분담해줄 선수가 없어 중요한 순간 견제가 몰리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경기 초반 특유의 팀 컬러 속에 끈끈함을 보여주다 중반 이후 캣 벨이 지치기 시작하면 기세를 내주는 흐름이 반복됐다. 
 
사이드 공격의 공백을 중앙공격의 강화로 메워보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오랫동안 속공이 아닌 블로킹 중심의 센터라인을 구축했던 터라 중앙 공격의 다채로움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시즌 전부터 약점으로 지적됐던 리시브 불안도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이런 불안 속에 신인들이 착실히 실력을 키워나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스타일이 확고한 잘 짜인 팀 시스템 덕분에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비교적 빠르게 코트에 적응했다. 이중 2년차 세터 박혜진은 개막 직후부터 흥국생명이 작정하고 선발로 중용했다. 2020~2021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선발한 177cm의 장신 세터 박혜진은 아직 위기상황을 버터나갈 관록은 부족하지만 볼 배급 기본기가 좋고, 큰 키를 이용한 플레이도 능해 장기적 성장을 기대해 볼만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기대대로 불안함 속에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미래의 희망을 키웠다.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이 드래프트 상위순번을 독점한 가운데에서도 좋은 고졸신인을 키워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2라운드 3순위로 뽑은 정윤주다. 드래프트 이전부터 올 시즌 신인 중 공격력에서만큼은 최상위권으로 꼽혔던 선수답게 시즌 중반 플레잉타임을 받은 뒤부터 당찬 공격을 코트에 펼쳐냈다. 결국, 시즌 뒤 신인왕 투표에서 도로공사 세터 이윤정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미숙한 부분을 노출한 리시브 등 기본기를 잘 보강한다면 구멍난 흥국생명 사이드 공격을 책임질 재목이 될만하다.
 
이렇게 희망과 아쉬움이 공존했던 2021~2022시즌을 끝낸 흥국생명은 리그 종료 뒤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무려 8년 동안 성공적으로 팀을 이끌어온 박미희 감독이 퇴진하고 남자부 KB손해보험을 이끌었던 권순찬 감독을 영입한 것. 남자배구의 방식을 접목해 더 빠르고 파워풀한 배구로 변화하고자 하는 최근 여자배구의 흐름에 흥국생명도 몸을 실었다. 
 
권순찬 감독은 비록 현재는 침체됐지만 승리의 경험을 갖춘 선수단을 이어받게 됐다. 어리고 발전을 위한 여백이 많은 선수들도 그에게 맡겨졌다. 권 감독이 이들과 함께 차기 시즌에 흥국생명의 새로운 승리방식을 만들지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긴다. 흥국생명의 새로운 시대를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지켜보자.
 
서필웅(세계일보)